왜 우리는 타인을 판단하는가? - 윤리와 타자 철학
우리는 일상 속에서 수없이 타인을 판단하며 살아갑니다. 누군가의 행동을 보고 "옳다" 또는 "잘못됐다"고 결론 내리고, 때로는 그것을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며 사회적 규범을 강화합니다. 하지만 그 판단은 정말 공정하고 객관적인 것일까요? 우리는 왜 타인을 그렇게 쉽게 평가하려 하는 걸까요?
도덕 판단은 어디서 오는가?
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도덕 판단의 근원에 대해 탐구해왔습니다. 이성 중심의 윤리를 강조한 칸트는 "보편화 가능한 행위만이 도덕적"이라며 도덕의 기준을 이성 안에서 찾았습니다. 반면 공리주의자 벤담과 밀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결과 중심의 판단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공통적으로 타인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전제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경험과 신념, 감정에 기반해 판단을 내리기 때문에 진정한 객관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존재합니다.
타자 철학: 타인을 보는 또 다른 시선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는 인간 존재를 설명할 때 ‘타자(他者)’라는 개념을 중심에 두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타인을 인식할 때, 그를 객체화하거나 판단의 대상으로 삼는 순간 그 사람의 고유한 존재성을 침해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진정한 윤리는 타인을 “이해”하거나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타자의 얼굴을 마주하고 책임감을 느끼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판단이 아니라, 응답(responsibility)이 윤리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타인을 쉽게 판단할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집단 내 질서를 유지하고 소속감을 확인하기 위해 타인을 평가하고 구분짓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적 효율성’이라고 설명합니다. 복잡한 사회를 단순하게 이해하기 위해 사람들을 유형화하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또한 다음과 같은 요인들이 타인에 대한 판단을 가속화합니다:
- 선입견과 고정관념: 문화적, 사회적 배경에 따라 형성된 편견이 무의식적으로 판단에 영향을 미침
- 자기 정당화: 자신의 선택이나 가치관을 방어하기 위해 타인을 비판적으로 바라봄
- 도덕적 우월감: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이분법적 사고
타인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
타인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를 하나의 ‘답’이 아닌, 하나의 ‘질문’으로 바라본다는 태도입니다. 이는 단순한 관용(tolerance)이 아니라, 더 깊은 윤리적 책임과 응답의 자세입니다.
철학은 우리가 삶을 더 잘 살아가기 위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타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윤리 철학의 핵심 주제 중 하나입니다. 판단이 아닌 이해, 통제가 아닌 응답을 중심에 둘 때, 우리는 보다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맺음말: 타인을 보는 철학적 태도
SNS 시대, 우리는 너무나 쉽게 누군가를 ‘캔슬(cancel)’하거나 비난합니다. 그러나 철학은 그 누구도 완벽히 이해될 수 없고, 모든 존재는 고유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윤리란 바로 그 고유함을 인정하고, 타인의 목소리에 응답하려는 노력 속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하루, 우리는 몇 번이나 타인을 판단했는지 되돌아보며, 레비나스가 말한 “타자의 얼굴을 향한 책임”을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요?